칼럼

글 속에 이미 많은 답들이 나와있습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는 과정은 상담보다 더 중요한 과정입니다.

먼저 이 글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주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운명 결정론적인 시각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올해 취업이 될까요? 시험에 합격할까요? 연인과 재회가 가능할까요? 등의 질문입니다.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시각으로 보면 한편으로는 참 속이 편합니다. 고민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거든요.
하지만 명리학은 그런 운명결정론적인 시각과 차이가 있습니다.
명리학은 운명이 결정된 게 아니라 운을 앎으로서 노력을 통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지를 명리학의 두가지 측면에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명리학은 미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을 구체적으로 알게 해줍니다. ‘메타 인지’ 라고 하죠.
메타인지가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문제가 닥쳤을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과 나의 한계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내 한계가 어느정도인가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언뜻 보면 내 한계를 안다는 것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들리는 말입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무시하는것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축구를 할 때 키가 160cm 인 사람이 키가 180cm인 사람보다 헤딩과 몸싸움을 잘할 수 있을 확률은 매우 떨어집니다.
메시의 키는 160cm대 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키가 180cm 인 사람과 똑같은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축구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프로 데뷔조차 하기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시는 자신의 키가 작은 부분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키가 작아서 키가 큰 사람보다 몸싸움과 헤딩에서는 약했지만, 몸이 더 날렵했고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있었습니다.
작은 키라는 핸디캡을 빠른 드리블 능력이라는 장점으로 바꾸면서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메시가 엄청나다라는게 아닙니다.
160cm 와 180cm 인 사람이 똑같은 종목인 축구 안에서도 이렇게 각자의 특성을 살려 차이를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인생을 위처럼 축구라는 경기에 비유 해봅시다.
내 사주를 안다는 것은 내가 160cm인 사람인지, 180cm인 사람인지를 아는것과 같습니다.
내가 드리블 쪽으로 실력을 키울지, 헤딩쪽으로 실력을 키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키가 작은 사람은 헤딩실력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드리블쪽으로 실력의 방향을 잡되 헤딩실력은 완전히 모자라지 않을정도로만 키우면 됩니다.
또한 명리학은 본인의 장점에 대해 한가지 방향만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본인이 잘하는 부분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설명을 해줍니다.
예를들면 키가 작지만 스피드가 빠르니, 공격수 혹은 후방 측면의 빠른 수비수같은 스피드를 적극 활용하는 위치에 적합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때 인생에 더욱 확신이 생기고 자유도가 높아집니다.
모든걸 잘 할 수 있다는 착각은 오히려 이도저도 안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둘째, 명리학을 통해 대운(10년운)과 세운(1년운), 월운(1달운), 일운(1일운) 이라는 운의 변화를 예측해서, 내가 시기에 따라 어떤 환경과 맞딱뜨리고 어떻게 대응하는게 현명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주를 점술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흔히 이런 시기를 예측하는 것을 통해 운명이 정해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운이라고 하는 것을 일기예보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비가 온다고 합니다.
일기예보를 미리 보고 간 사람은 우산을 써서 비를 맞는것을 피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기예보를 보고 가지 않은 사람은 비에 젖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일기예보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큰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일기예보를 안다는 전제하에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이 부족한 지역에 사는데, 비가 온다고 하니 대야를 가지고 나가 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가 온다고 하니 막걸리와 파전을 준비하고 오랜만에 친구를 초대합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비를 활용하는 방법은 가지각색 입니다.

운이란건 이렇게 달라지는 날씨라고 볼 수있습니다. 명리학은 이 날씨를 예측하는 일기예보구요.
내 인생에 어떤 날씨가 올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그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나에게 선택권이 생깁니다.
비가 오지 않게 하는건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런 부분은 쿨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비가 온다는건 내가 비에 젖지 않게만 조심하면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명리학은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 운을 활용할 것인가.
명리학은 무조건 좋은 운도 없고, 무조건 나쁜 운도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게 다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죠.
비가 오면 습기때문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지만 농사짓는데는 꼭 필요한 것처럼요.
그렇다면 운의 긍정적인 부분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부정적인 부분은 조심하는게 현명한 자세 아닐까요?
나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는 운명결정론적인 시각에서 탈피해서 말이죠.

코스몬소다는 여러분이 자기자신을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에게 오는 운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노력하는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주는 것을 상담철학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미 정해진 운명을 본다’ 라는걸 기대하고 오신 분들께는 정중하게 돌아가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저희는 사주 명리학을 통해 노력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코스몬소다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